문화

스크린을 휩쓴 올해의 시선들: 치열한 현실의 기록부터 애니상 싹쓸이 흥행작까지

현실의 이면을 묵묵히 짚어낸 국내 독립영화계부터 전례 없는 기록으로 새 역사를 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계까지, 최근 국내외 영화계는 각자의 위치에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작품과 창작자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내고 있다.

관료주의에 맞선 기록,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는 최근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와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을 각각 ‘2025 올해의 독립영화’와 ‘올해의 독립영화인’으로 선정하며 현시대 창작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조명했다.

‘3학년 2학기’는 직업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 밖 현장 실습에서 마주하는 뼈아픈 노동의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한독협은 이 영화가 보여준 태도야말로 지금 독립영화가 짊어져야 할 역할과 가치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평가했다.

올해의 독립영화인으로 호명된 정윤석 감독의 행보 역시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는 지난해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당시, 기록이 절실히 요구되는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예술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폭동 당일 법원 경내에 진입해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지난 연말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시위대와 거리를 두고 촬영했다는 점을 인정해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는 무죄로 보았으나, 단순건조물침입죄는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한독협은 관료적 사법주의에 결코 굴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기록 의지에 굳건한 지지와 연대를 표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압도적 10관왕과 엇갈린 명암

시선을 바다 건너로 옮겨보면, 지난 토요일 밤 열린 제53회 애니상(Annie Awards)은 그야말로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를 위한 대관식이었다. 이 작품은 장편 작품상을 필두로 매기 강과 크리스 애플한스의 감독상, ‘루미’ 역을 맡은 아덴 조의 성우상 등 후보에 오른 10개 부문 트로피를 모조리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결과는 충분히 예견된 돌풍이었다. 현재까지 4억 8,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인 데다, 사운드트랙 스트리밍은 110억 회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기술 부문인 미술상, 음악상, 각본, 캐릭터 디자인, 애니메이션, 특수효과(FX), 편집상까지 싹쓸이한 이 넷플릭스 역대 최고 흥행작은 다가올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입지를 굳혔다.

승자의 환호 뒤에는 씁쓸한 이변도 따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동일하게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디즈니·픽사의 ‘엘리오(Elio)’는 스토리보드 부문마저 드림웍스의 ‘배드 가이즈’에 내주며 단 하나의 트로피도 챙기지 못했다. 역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인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주토피아 2’ 역시 철저히 외면당하며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독립 애니메이션의 약진과 묵묵한 공로자들을 향한 헌사

장편 독립영화상은 칸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던 네온의 SF 판타지 ‘아크로(Acro)’에게 돌아갔다. 이 작품은 오스카 레이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토피아 2’, ‘엘리오’, ‘리틀 아멜리에’ 등 쟁쟁한 경쟁작들과 맞붙게 된다. 2002년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이 신설된 이래 애니상 장편 수상작 23편 중 14편이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향후 시상식의 결과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물론 지난해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와일드 로봇’ 대신 ‘플로우’가 오스카를 차지하며 공식을 깬 사례도 존재한다.

TV 부문의 경쟁 또한 치열했다. 넷플릭스의 ‘러브, 데스 + 로봇’은 이날 3개의 상을 추가하며 에미상 17관왕에 이어 애니상 11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완성했다. 픽사의 첫 장편 시리즈 ‘윈 오어 루즈’와 어덜트 스위밍의 ‘커먼 사이드 이펙트’도 각각 3관왕에 오르며 저력을 과시했고, 폭스 ‘밥스 버거스’의 성우 댄 민츠와 훌루의 ‘검볼’ 에피소드 역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화려한 작품상 외에도 업계를 든든하게 지탱해 온 이들을 위한 헌사가 시상식을 따뜻하게 채웠다. LA 산불 피해를 입은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을 위해 구호 기금 ‘AnimAID’를 설립해 70만 달러 가까이 모금한 프로듀서 샌디 라빈스는 심사위원상인 준 포레이상(June Foray Award)을 받았다. 평생 공로상인 윈저 맥케이상은 크리스토퍼 밀러와 필 로드 콤비, 미카엘 두독 데 비트, 그리고 시상자 티아 카레레의 축하를 받은 크리스 샌더스에게 돌아갔다. 이 밖에도 라이트박스 엑스포가 특별상을, 와콤이 기술상(Ub Iwerks Award)을 수상했으며, 엘머 플러머와 더그 크레인을 비롯한 5인의 창작자가 2026년 애니메이션 교육자 포럼 명예의 전당에 새롭게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