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80년간 숨겨져 있던 피카소의 작품, 드디어 공개

80년 동안 단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파블로 피카소의 미공개 작품이 파리의 한 경매 회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화가였던 도라 마르를 그린 초상화로, 1944년 한 개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이후 그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그려진 도라 마르의 초상

‘꽃 모자를 쓴 여인의 흉상 (도라 마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피카소와 마르의 9년간 이어진 격동적인 관계가 끝나갈 무렵에 그려졌습니다. 피카소가 그린 마르의 다른 유명한 초상화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비교적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로 마르를 묘사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 마르의 얼굴은 분열된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원근법이 무시된 밝은 색채 속에서도 깊은 고뇌에 차 있으면서 눈물을 흘리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이 완성될 당시 마르는 61세의 피카소가 21세의 젊은 예술가 프랑수아즈 질로를 위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태였습니다.

피카소의 뮤즈이자 고통받는 연인, 도라 마르

피카소는 ‘도라 마르의 초상’, ‘고양이와 함께 있는 도라 마르’ 등 수많은 작품에서 마르를 그렸지만, 정작 마르는 생전에 “내 초상화는 모두 거짓이다. 그것들은 모두 피카소일 뿐, 어느 하나도 도라 마르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35년 말에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피카소는 딸 마야를 낳은 마리테레즈 발테르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마르와도 연인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전문가들은 피카소가 마르의 마조히즘적 성향에 매료되었으며, ‘우는 여인’과 같은 작품에서 그녀를 고통받는 인물로 자주 묘사했다고 분석합니다. 이는 스페인 내전의 고통을 상징하는 동시에, 피카소가 마르에게 가한 정신적 학대와 잦은 다툼 등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녀는 단순히 피카소의 뮤즈이자 연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뛰어난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였으며 그녀의 예술 스타일은 피카소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치 점령하 파리에서 개인 소장가의 손으로

이 초상화는 1943년 7월에 완성되었으며, 파리 해방을 몇 달 앞둔 1944년 8월 한 개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이후 비공개로 보관되어 왔습니다. 그동안 이 작품의 존재는 판매 직전 촬영된 흑백 사진을 통해서만 미술계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현재 소유주는 익명의 프랑스인 수집가였던 조부모로부터 이 그림을 물려받았으며, 신원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파리를 점령했던 나치는 피카소의 작품을 ‘퇴폐 미술’로 간주하여 그의 작업실을 급습하고 전시 금지 위협을 가하는 등 예술 활동을 탄압했습니다.

경매에 부쳐지는 걸작, 그 가치와 의미

작품을 공개한 파리의 경매 회사 뤼시앙 파리(Lucien Paris)는 이 유화(80cm x 60cm)의 가치를 보수적으로 약 800만 유로(한화 약 115억 원)로 추정했지만, 실제 낙찰가는 이를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매사 크리스토프 뤼시앙은 이번 발견을 “중대한 발견”이자 “걸작”이라고 칭하며, 이 작품이 암울했던 점령기 시절 한 줄기 빛과 같았던 피카소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전문가들은 사진을 통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진정한 색채를 직접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이번 발견은 미술사의 중요한 이정표일 뿐만 아니라 피카소 개인의 삶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이 작품은 도라 마르를 그린 신선하고 감정이 풍부한, 매우 이례적인 초상화이다. 이 그림을 발견한 것은 우리 전문가들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감격을 표했습니다.